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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정신과 몸이 건강한 친구 두 명이 있다. 나는 언제나 못된 녀석들을 좋아했지만 실제로 그들과 친구가 되는 일은 별로 없었고 오히려 선량한 배려심과 활달함을 가진 몇몇 녀석들이 나의 친구가 되었다. 정신이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나와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친화력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사물의 밝은 점을 먼저 보는 이들은 사람의 개성을 왜곡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바로 그 점이 그들로 하여금 나를 독특하면서도 재밌는 인간으로 보이게 만들어주었다. 내 친구들 중에서 가장 결혼을 빨리한 친구도 이들 두 명이다. 이들은 자신의 사랑스러운 신부를 친구들에게 소개시키는 것을 빼먹지 않았고 고맙게도 그 자리에 나를 불러주었다. 신기하게도 이 둘의 신부는 인상이 매우 비슷했는데 착하고 여성스러운 크리스천 분위기의 이들은 자신의 사회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듬직한 내 친구들을 시종 사랑스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 중 한 명의 신부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밝히기도 했듯이 그들이 내 친구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해 보였다. 그것은 어딜 내놔도 굶어죽질 않을 생활력과 긍정적 마인드, 능글능글한 성격과 남자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인간관계 등이다. 주례 없이 치러진 결혼식은 바로 그러한 친구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축가에 율동으로 답하는 이벤트 등은 아주 건강하고 활기찼다. 그것은 누가 봐도 흐뭇한 결혼식이었다. 정말 그랬다. 내가 그 친구의 장인어른이었다면 듬직한 사위가 아주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는데 아는 사람은 두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그의 폭넓은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정체 모를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부인이며 여자 친구를 저마다 데려왔는데 그 중 내가 결혼식까지 차를 얻어 타고 간 한 쌍의 연인은 서수남과 하청일처럼 내가 듣기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얘기를 몇 시간씩이나 즐겁게 주고받아 나를 감탄시켰다. 요즘 나는 스몰토크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려서 백분토론처럼 주제가 정해져 있는 얘기가 아니라면 한 마디도 할 수 없게 돼 버렸다. 자동차 세금이나 남해 전어가 맛있는 이유에 대해 나는 정말 한 마디도 할 수 없다. 사람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고 볼링을 치러갔다. 나는 무거운 공을 굴려 핀을 쓰러트리는 데 영 재주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 광경이 그리 낯설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를 이름 대신 별명으로 불러주는 친구들과 평화로운 고향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술을 마시고 볼링 따위를 치며 평화롭게 하루를 보내는 것은 어쩌면 어릴 적 내가 꿈꾸던 어른의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예전의 내가 거기 있던 친구들과 하루를 보내는 방법이기도 했다. 내가 고향을 떠나 있는 동안 그들은 변함없이 그렇게 하루를 보냈고 결혼을 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일상이 이제는 내게서 멀어졌으며 더 이상 나의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해야 했다. 솔직히 말해 그것은 두 친구가 내게 보인 관심이 공평하게 분배된 다양한 관심사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을 느낀 후 내가 그들을 멀리한 것과 비슷한 속도로 멀어졌다. 나는 그날의 평범함과 건강함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병신 같은 친구가 딱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병신인 척하는 친구 말고 진짜 병신인 친구 말이다.
야니 스타브라카키스는 라클라우의 제자로 알려져 있고 라클라우와 무페는 그 유명한 사회변혁과 헤게모니의 공저자다. 스타브라카키스의 라캉과 정치(원제는 라캉과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은 사실 라클라우의 급진적 민주주의를 정신분석학의 용어로 반복한 것이며 따라서 당연히 무페의 민주주의의 역설과도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정치적인 것"에 대한 공유는 무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이라는 저서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차이라면 라캉과 정치가 유토피아 정치의 구체적 사례로서 주로 파시즘을 다루는 것과 달리 민주주의의 역설은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탈정치성과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을 가상illusion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라캉에 대한 해석을 축으로 보다 정교한 이론적 전선이 형성되는데 그것은 둘째 문제고 나꼼수와 안철수가 판치는 세상에서 이 책의 자유민주주의 비판은 그 자체로 큰 가치가 있다. 1. 체코 처음으로 밟은 외국 땅이 체코였다는 것은 운이 좋은 일이었다. 프라하는 우리가 유럽을 떠올릴 때 흔히 상상하게 되는 이미지들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도시였다. 도시를 관통하는 아름다운 강과 오랜 시간 보존되어 온 옛 양식의 건축물들, 곳곳에 남아 있는 조각상은 내 시선이 닿는 매 장면을 사진으로 만들었다. 그 이국적인 풍경은 평소 여행에 대한 호들갑스러운 사회적 과대 포장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도 약간의 설렘과 흥분을 주었다. 그런 외부적인 풍경과 함께 또한 생소하게 다가왔던 것은 다름 아닌 소수 인종으로서의 자각이었다. 한국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나는 언제나 다수에 속해 있었고, 당연하게도 다수 인종으로서의 자각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중심과 주변의 시선 전환은 오로지 자신이 주변의 측에 섰을 때에만 가능해지는 것이며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 자신을 제삼자의 시선 안에서 낯설게 대상화시킨다. 나는 단지 동양인인 것이 아니라 서양인이 바라보는 동양인이었고 내 존재가 누군가의 시선 속에 하나의 상으로 맺혀진다는 것은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내가 체코에 간 목적은 고급 양복을 입고 가죽 냄새와 커피향이 섞여 있는 사무실에 앉아 회사의 미래가 달려 있는 중대한 사항을 협의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대신 나는 잘생긴 체코 청년들과 발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정직하고 묵묵한 노동의 시간을 보냈다. 첫날이라 미숙한 점이 많았고 내가 허둥대는 동안 낙천적인 체코 청년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수다를 떨었다. 필요한 인력보다 많은 사람이 오기도 해서 아마도 그들에게 그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돈벌이였을 것이다. 저녁에는 법인 사람들과 한국 식당에서 술을 먹었다. 한국 사람마저 외면할 법한 인테리어의 그 식당에는 안젤라라는 이름이 어울릴 법한 예쁜 체코 아가씨가 어설픈 한국어로 손님을 맞고 주문을 받았다. 그 뒤로는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 정말 끔찍한 것은 내가 그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호텔 침대에 누워 있었고 그때부터 사경을 헤매며 긴 밤을 보내야 했다. 그 와중에 예쁜 백인 소녀가 등장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것은 서양 여성에 대한 내 성적 욕망의 발로가 분명했다. 다음날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며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하루의 반을 침대 위에서 보내야 했다. 내가 왜 지구 반대편에서까지 이러고 있나 생각하니 화가 났다. 인간을 아홉 개의 등급으로 나눌 수 있다면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게 술을 권하며 자신의 간 기능을 과시하고 거기서 희열을 느끼는 인간이 9등급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아무렇게나 걸어 당도한 카를교와 프라하성은 생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들인지 알까 궁금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나 부정하는 사람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 나라의 닭장처럼 생긴 높고 네모난 시멘트 건물들을 보고 나면 생각이 바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하루 만에 뒤집어졌는데 이튿날 도시를 거닐고 있자니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이었다.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나는 거기에서 폐쇄된 반복의 답답함 같은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라하는 밀물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매일 되풀이되는 관광도시다. 모든 것이 역사의 유물인 그곳에서는 도시가 사람의 배경이 되지 않고 사람이 도시의 배경이 된다. 그곳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도시 그 자체다. 시간이 멈춰버린 거대한 역사의 조그만 일부가 된다는 것은 관광객들의 환상만큼 그리 멋진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2. 네덜란드 출장 전 소집된 회의에서 처음 P를 만났다. 나는 내 또래 사내들을 싫어하기 때문에 연배 높은 그와 동행하는 게 내심 기뻤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동료 관계는 깨지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영리함을 남에게 보여주며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이었고 그런 타입이 흔히 그러하듯이 내가 어떤 실수를 할 때마다 과장되게 웃으면서 핀잔을 줬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면 된다는 놀라운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내 머릿속에 완벽한 영어 문장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나를 전장의 일선으로 밀어 넣고 자신은 한 발짝 물러나 뒷짐을 지고 있기 일쑤였다. 그러고는 뒤에서 지금 상황이 어떻게 잘못됐고 어떻게 해결하면 되는지를 명확한 한국어로 얘기해줬는데 뻔뻔하게도 그 말투에는 자신의 영리함과 나에 대한 답답함이 묻어 있었다. 물론 그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런 식의 태도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적어도 그것은 혼자서는 당장 국제 미아가 될 사람이 자신의 생존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에게 보일만한 태도는 아니었다. 암스테르담은 프라하와는 달리 현대화가 잘 되어 있는 도시였다. 비행기 내부와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부터 깔끔한 인상을 줬고, 널찍널찍 세워진 건물들과 도로는 크고 반듯했다. 새벽에 일어나 Y의 차를 타고 안개가 많이 낀 도로를 달렸다. 창문 밖으로 끝없는 평지가 펼쳐졌다. Y는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지만 어떤 주제에 대해 말을 할 때는 굉장한 달변가였다. 이동 중 네덜란드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들려줬는데 그것만으로 네덜란드의 모든 것을 안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전 중으로 일을 끝내고 법인을 방문했다. 잘생기고 예쁜 현지 직원들이 스타일리쉬한 옷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 세련된 디자인의 건축물 안에서 일을 하는 모습은 어딘가에서 봤던 외국 광고를 떠올리게 했다. 정작 물건을 만드는 것은 개발자인 우리지만 그 화려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그리고 추울까봐 입고 간 내 후줄근한 점퍼를 보고 있자니) 순간 나 자신이 저들을 위해 일하는 아시아 노동자 중 한명인 것처럼 느껴졌다. 밥을 먹으면서 Y는 네덜란드인들의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에 대해 얘기했다. 이들은 한국인처럼 각박하게 살지 않는다고, 그러면서도 더 많은 소득을 벌어들이는 이들이 좁은 땅에서 아등바등 사는 한국인을 보면 참 웃길 것이라고 얘기했다. 네덜란드인들의 웰빙 라이프라면 암스테르담 근처의 교외 도시를 한 시간 정도 걸어 다니면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참이었다. 녹지와 호수와 전원주택이 그림 같이 예쁘게 어우러진 곳에서 노인이 산책을 하거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하는 모습이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Y는 네덜란드의 작은 임금 격차와 발달된 보험제도, 높은 교육 수준과 낮은 강력범죄율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특히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는 네덜란드의 부모와 성인이 되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는 네덜란드의 건실한 청년들에 대해 얘기하며 한국 사람들의 잘못된 의식을 꼬집었다. 그런데 의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가족을 중시하는 비정상적 의식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가족이라는 경제적 단위의 비정상적 중요성에서 나온다. 가족은 협업에 필요한 인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원시적인 경제적 교환 관계에 그 기원을 둔다. 우리는 이 원시성을 현대의 가족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희생적으로 투자하고 부채의식(한국인은 이것을 효라고 부르지만)을 가진 자식이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경제적 교환 관계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근간이다. 자식이 아니면 노후를 보장 받지 못하고, 부모가 아니면 미래를 보장 받지 못하는, 그래서 이 원시적인 야생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똘똘 뭉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향해 의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순진무구한가. 그 말은 은퇴를 하면 든든한 연금으로 노후를 보장 받는 네덜란드의 부모와 달리 자식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한국 부모의 의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혹은 그 말은 적성에 맞는 일을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네덜란드의 청년과 달리 하루하루 낙오의 공포를 느끼며 토익과 고시 서적을 뒤적여야 하는 한국 청년의 의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가족의 원시적인 기능을 사회가 분담하여 떠맡는 데 민주적으로 합의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공동체를 바라보면서 그러나 나는 마냥 부러움만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부자가 빈자를 필요로 하듯이 대부분이 잘사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대부분이 못사는 사회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 이 세상의 발전이란 결국 양자의 간격을 벌리고 그 사이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었는가? 한 편의 추함과 고통이 어떤 경로를 거치고 나면 다른 한 편에서는 그저 예쁘고 편리한 상품의 형태로 진열되고 그것을 사이좋게 나누어 가지기만 하면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흔히 시장이라고 부르는 저 알 수 없는 경로에 불합리와 폭력은 없는가? 아니면 불합리와 폭력은 인간의 추함을 "눈에서" 감추어간 모든 역사처럼 단지 유통 과정에서 보기 좋게 포장되었을 뿐인가? 이런 편협하고 불순한 생각을 하면서 거기서도 더럽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다른 인종"을 보고 있자니 나는 다만 울적하고 쓸쓸할 뿐이었다. 3.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마침내 공황증이 찾아왔다. 출장 내내 비행기를 타면서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좀 심했다. 현기증에 읽던 책을 덮고 눈을 감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내 머릿속은 비행기 추락 사고를 전하는 내일 뉴스 헤드라인과 신문 일면들로 채워졌다. 안정을 찾기 위해 엷은 미소를 띤 스튜어디스의 표정에서 일상성을 탐색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자신이 지금 이대로 땅으로 곤두박질 쳐 흔적 없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몇 만 피트 상공에서 웃으며 커피를 따라주는 일을 내가 혹시라도 하게 된다면 그것은 내 직업이 아니라 지옥에서의 형벌일 것이다. 스웨덴을 생각할 때 나는 렛미인의 을씨년스러움을 우선 떠올렸는데 실제 스웨덴이 그랬다. 도시 전체가 무채색으로 보였고 저녁이 채 되기도 전에 해가 졌다. 호텔에서 막 짐을 풀었을 때 법인 직원인 H가 찾아와 우리를 한국 식당으로 안내했다. H는 호남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가 작업할 곳이 스톡홀름에서 400km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움직일 수는 없고 현지 직원들과 같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날 현지 직원인 D와 T가 호텔로 찾아왔다. 흙이 잔뜩 묻은 경차를 끌고 왔는데 장거리 운행에는 적합하지 않은 차였다. D는 아주 유쾌한 사람이었고 T는 놀랄 만큼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이동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D가 운전하는 동안 나는 주로 잠을 잤고 가끔씩 창밖으로 북유럽의 높고 뾰족한 나무들을 구경했다. 사실 스웨덴에서 처리할 일이 가장 많았는데 D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을 더 부르지 않았다고 했다. D는 우리 회사에 오래 근무한 탓인지 그런 면에서는 어느 정도 한국화가 되어 있었다. 첫째 날 일을 끝내고 저녁을 함께 하면서 D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우리나라와 일본 회사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애사심도 그가 나보다는 많아 보였다. 이튿날도 강행군이었다. D는 시종일관 성실했고 T 역시 묵묵히 제 할 일을 했다. P와 나는 한국인이니 말할 것도 없었다. 쉬는 시간도 없이 일한 결과 예상보다 훨씬 일찍 일을 끝냈다. 한국인과 한국화된 외국인 네 명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보여주었다. 스톡홀름으로 돌아와 H가 안내해주는 대로 구시가지와 멜라렌 호수 주변을 둘러봤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과거와 현대의 건축물이 조화롭게 어울렸고 멜라렌 호수변의 야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H는 밤늦게까지 해가 지지 않는 스웨덴의 여름은 천국 같다고 말하며 우리가 겨울에 온 것을 아쉬워했다. 나도 그것이 아쉬웠다. 기회가 되면 스웨덴과 핀란드를 오간다는 유람선을 타보고 싶었지만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며 내가 이번 유럽 방문에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생각하니 새삼 놀라웠다. 나는 더 이상 유럽을 동경하는 낭만적인 소년이 아니었다. 해외에 나가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울 수 있으며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는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번 경험이 그나마 남아 있던 유럽에 대한 환상을 청산하는 기회가 되었을 뿐이다. 방문 목적이 출장이 아니라 여행이었어도 상황이 크게 바뀌었을 것 같지는 않다. 내게 여행은 관광 이상의 의미는 없다. 누군가는 골방에서 책을 읽을 시간에 밖에 나가 세계를 경험하라고 한다지만 나는 반대로 쓸 데 없이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닐 시간에 제대로 된 책 하나를 읽으라고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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